이탈리아

슈퍼 마리오, 이탈리아 신임 총리 드라기는 누구인가?

[로마-EU데일리] 마리오 드라기가 이탈리아 신임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thelocal) 지난 2.12 신임 총리 지명을 수락한 “슈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로마-EU데일리] 유럽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 그는 유로존(*유럽 내 유로화 사용 국가)을 지키기 위해 무슨 수단이라도 동원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이탈리아를 코로나19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한 구원 투수로 70이 넘은 나이에 총리직을 수락하며 이탈리아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 이탈리아 국민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전문가들은 슈퍼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별명)가 이탈리아 총리에 취임하자 경제 전문가로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과 희망 가득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유럽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가 이탈리아의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오히려,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등과 함께 2천 년대 후반 이후로 복지 과잉에 따른 경제 성장률 저하와 같은 만성적인 재정 문제가 뒤덮일 정도로 코로나19가 부여한 새로운 경제 문제에 대한 원인 분석은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신임 총리에게 순풍에 돛을 단 듯한 분위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탈리아 각 정당은 드라기 신임 총리에게 매우 긍정적인 지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덕분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음에도 이탈리아 주식 시장은 연일 상승세를 유지 중이다. 당초, 전임 주세페 콘테 총리가 연정 해체로 인한 사임 이후에 재신임될 것으로 예측하던 정치 전문가들이 많았으나, 중도 좌파 성향을 보이던 그와 연정 파트너들이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인해, 마타렐라 대통령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조기 총선의 실시는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과감히 경제 전문가인 드라기 신임 총리를 적극 지지하고, 심지어 타 정당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게 된 상황이다.

1947년생으로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든 드라기 총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0대 청소년기에 부모님을 갑자기 여의고 난 이후에 두 동생을 책임 져야했다. 1968년 이탈리아의 혁명기에 20대 청년으로서 혁명 정신을 충분히 공감했음에도 앞장서서 혁명 운동을 지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내 머리는 꽤 길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장발까지는 아니었다”라고 지난 2015년 독일 디 차이트 매거진과 인터뷰를 통해 고백할 만큼, 스스로 완전히 두드러질 정도로 앞장서는 성향의 인물은 아니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도 않는 편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표현한 바 있다. 카톨릭계인 예수회가 운영하는 엘리트 고등학교를 다니며, 특히 수학과 라틴어, 그리고 농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했던 드라기 총리는, 한때 슈퍼카 메이커인 페라리 사의 대표였던 루까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와 함께 수학한 동문이기도 하다. 총리의 또 다른 동창생인 방송인 쟌카를로 마갈리도 이탈리아 유력 매체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렸을 적의 드라기는 지금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언제나 한켠에서 씨익 웃어 보이는 지금 모습 그대로이다”라고 할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공격적이거나 선동적인 정치인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AFP연합) 유럽 중앙은행 (ECB) 총재 시절의 드라기 총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낼 것”을 강조한 바 있다.

1970년, 경제학을 수료하며 집필한 논문을 통해 단일 통화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경제제도라 할 만큼, 현재의 유로존의 수호신에 가까운 경제 철학은 지난 40여 년에 걸쳐 급격히 진화 또는 변화한 모습을 보인 드라기 총리는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수의 이탈리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교수이기도 했다. 지난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약 6년 동안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이후 이탈리아 재무부 등 경제 관련 요직을 약 10년 동안 지내는 동안, 총 9개의 정권을 경험했을 정도로, 드라기 총리에 대한 경제 전문가로서의 신뢰와 존중은 수많은 정당 정치인들로부터 공통된 결론이었다. 이러한 이탈리아 국내 정권의 잦은 교체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탈리아 재정 관료 수장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드라기 총리는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거침없는 민영화 정책을 포함한 끝없는 노력을 통해 유로존에 잔류할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드라기 총리는 이탈리아 정부 관료들의 노하우를 키워가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동시에 쓸데없이 긴 회의를 싫어하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문제가 있을 때면, 드라기 총리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문제 자체를 연구하고 들여다보며,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곤 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에게 의견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설해 주던)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 결정을 따르도록 할 만큼 확실하게 문제를 분석하고 추진력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내부 인사들도 있다. 젊은 시절의 별명이 어디엔가 다른 곳에 있는 분으로 불릴 정도로 “수시로 회의에서 몰래 빠져나가는데 선수이기도 했다”라고 드라기 총리의 자서전을 집필한 알레산드로 스페취알레는 말했다.

(©AFP연합) 지난 2019년 후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 중앙은행 총재에게 상징물인 종을 건네주며 자신의 소임을 마쳤던 이취임식 당시의 모습. 

지난 2002년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 은행인 골드만 삭스에 합류하다가, 3년 후 이탈리아 국책은행의 당시 총재였던 안토니오 파치오가 스캔들로 퇴진하자, 이탈리아 국책은행의 신임 총재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후, 2011년에 유럽 중앙은행 총재로 지명되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디폴트 선언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크나큰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탓으로 유로존 전체가 붕괴할 위험에 놓였던 시기에 전격 임명된 이탈리아의 재정 전문가였기 때문에, 당시 세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과연 이탈리아와 유로존을 함께 구할 수 있는 구원투수인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상황이었다. 취임 후 1년만에, 드라기 당시 유럽 중앙은행 총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로존 체제를 지켜내고야 말 것”이라는 굳은 각오를 드러내며, “내 말을 믿고 따르라. 내 결정대로만 하더라도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유로존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탈리아와 유럽연합 전체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도록 리더십을 보이며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은 드라기 총리는 당시 뛰어난 협상 능력을 발휘하며 뛰어난 정치 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때문에, 이러한 ECB 총재로서 한 차례 유로존 전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던 그의 정치 감각을 인정하는 많은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현재 그의 총리직 수행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평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일정도로 조용한 성품에 가까운 그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이 순간에는 언제나 배드 캅(bad cop, 어쩔 수 없는 악역)을 도맡을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그의 결정력과 추진력은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있는 분위기이다.

“드라기 총리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유럽과 세계 무대에서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며 “단지 억지로라도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말도 말도 안되는 타협을 하는 인물이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지난 2019년 ECB 총재 임기를 마친 후 매우 조용한 삶을 지내온 그는, 지난 해 코로나19가 전국을 위기와 공포로 뒤덮은 가운데 두문불출하며 움브리아 지역의 농가에서 정계와는 거리를 두며 지내온 바 있다. 드라기 총리는 배우자와 슬하에 두 자녀를 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도 유명하다. 지난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임으로 바티칸 교황청의 사회학 전문 패널에 위촉되었으나, 이제는 이탈리아의 제 30대 총리로 취임하며 과거 유로존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뛰어난 리더십과 정치・외교 전문가의 모습을 보였던 그의 능력을 이탈리아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수적인 많은 정당 정치인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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